2025년 현재 글로벌 AI 인프라 투자 규모는 연간 4,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OpenAI는 AMD와 6GW급 GPU 데이터센터 구축 계약을 체결했고, NVIDIA와는 10GW 규모의 데이터센터 구축을 협의 중이며, Oracle과는 5년간 3,000억 달러 규모의 클라우드 계약을 체결했다. 일론 머스크의 xAI는 100만 개 GPU를 투입하는 '콜로서스 2' 데이터센터를 건설 중이며, Meta는 '타이탄 클러스터'에 이어 맨해튼 크기의 '하이페리온' 계획까지 발표했다.
이러한 초대형 투자의 최전선에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빠르게 입지를 확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테슬라의 차세대 AI칩을 수주했고, 엔비디아의 HBM3E(5세대 HBM) 12단 품질테스트를 통과하며 고대역폭 메모리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했다. SK하이닉스는 한발 더 나아가 HBM3E 12단을 세계 최초로 양산했고, 16단 48GB 개발을 완료해 2025년 상반기 양산을 앞두고 있다. 특히 HBM4 12단을 세계 최초로 샘플 공급하며 엔비디아향 HBM 공급에서 75%라는 압도적 점유율을 확보했다.
하지만 AI 인프라 전쟁의 진짜 승자는 반도체 기업만이 아니다. GPU 1개당 필요한 전력이 최대 700W에 달하면서 데이터센터의 전력밀도는 기존 대비 10배 증가했다. 이는 변압기, 케이블, 배전반 등 전력인프라 전반에 대한 대대적 업그레이드 수요로 직결되고 있다. 이에 전력인프라 생태계에 대한 투자 기회를 재평가해야 할 시점이라고 판단된다.
미국 전력망은 AI 수요 폭증과 인프라 노후화라는 이중 충격에 직면해 있다. IEA에 따르면 2024년 미국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은 180TWh 수준이며 AI 수요로 인해 2030년까지 420TWh로 2.3배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여기에 송전선의 70% 이상이 25년을 초과해 사용 중이며, 변압기의 평균 설계수명인 30-40년이 도래하면서 2000년부터 2021년까지 전력 중단(Power Outage) 사고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공급 병목이다. GE Vernova와 Siemens Energy 같은 주요 가스터빈 제조사들은 이미 2028년까지의 수주잔고를 축적한 상태로, 현재 신규 터빈을 주문하면 인도까지 최소 3-4년이 소요된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Source: IEA(2025.4), Energy and AI
Source: IEA
이러한 구조적 공급 부족은 국내 전력기기 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GPU와 서버의 전력밀도 상승으로 데이터센터 전력인프라 전반의 업그레이드가 요구되면서, 변압기·케이블·배전반 교체 수요가 급증하고 있으며, 특히 미국 수출 역량을 갖춘 국내 기업들의 매출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2020년대 초반만 해도 성숙 산업으로 평가받으며 낮은 배수를 적용받던 기업들이, 미국 수출 실적 확대와 함께 기술 기업에 준하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특히 데이터센터 특화 제품을 보유하거나 미국 UL/CSA 인증을 완료한 기업들은 프리미엄 밸류에이션의 대상이 되며 M&A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미국 중소형 변압기 수입시장은 연평균 44.8%라는 폭발적 성장을 기록 중이다. 이 시장에서 한국산 제품의 점유율은 2020년 9.2%에서 2024년 15.5%로 빠르게 확대되었다. 이러한 성장의 배경에는 미국 현지 제조사들의 공급 부족과 한국 기업들의 기술력 향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Source: 미국국제무역위원회 Dataweb, 한국전력 전자조달시스템
M&A 관점에서 프리미엄 밸류에이션을 받는 기업들의 특징은 명확하다. A사는 특수변압기 설계 역량을 기반으로 유럽 시장까지 진출했으며, B사는 전체 매출의 75%를 수출로 달성하며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C사는 미국 현지 공장 준공으로 새로운 성장 국면에 진입했다.
실사(Due Diligence) 과정에서 중점적으로 검토해야 할 사항들도 과거와는 달라졌다. 미국 UL/CSA 인증 보유 여부와 갱신 이력은 필수 체크포인트가 되었으며, 미국 총판업체와의 장기 파트너십 구조가 안정적 매출의 핵심이다. 특히 ESS용, 풍력용, 데이터센터용 같은 특수변압기 설계 역량은 향후 성장성을 판단하는 핵심 지표다. 초고압 Major 업체와의 ODM 협력 관계도 기술력을 간접 검증하는 중요한 요소로 평가된다.
Source: 유안타증권, 전자공시시스템
Source: Euromonitor, Bizline
케이블 섹터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공 사례는 D사다. 15년간 구축한 미국 총판과의 관계를 기반으로, MV105(105도 고온 대응) 인증이라는 차별화 요소를 확보하며 매출을 289억원에서 806억원으로 급증시켰다. E사는 자동차 전선에서 시작해 산업용 전선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고, 해외 생산기지 다각화를 통해 리스크를 분산시키고 있다.
투자 매력도를 평가할 때는 세 가지 기준이 핵심이다. 첫째, 미국과 캐나다 현지 유통망 확보 수준이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현지 판매망 없이는 시장 진입이 어렵다. 둘째, 선박용·원전용·알루미늄 소재 케이블 같은 특화 제품 포트폴리오의 유무다. 범용 제품 시장은 이미 과열 경쟁 상태이기 때문이다. 셋째, 해외 생산법인을 통한 리스크 분산 정도다. 최근 강화되고 있는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를 고려할 때 현지 생산 역량은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일반 데이터센터와는 다른 특수한 요구사항을 갖는다. 24시간 365일 중단 없는 운영이 필수이며, 이중화된 전원 시스템과 실시간 모니터링이 요구된다. 전력 품질에 대한 요구수준도 훨씬 높다.
이러한 니즈를 충족시키는 국내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F사는 전체 매출의 60%를 데이터센터에서 창출하며 이 분야 전문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G사는 선박용 전장품에서 쌓은 신뢰성을 기반으로 데이터센터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단순히 제품을 공급하는 것을 넘어, 고객의 운영 효율성까지 고려한 토털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기술 리스크는 전력기기 산업에서 가장 치명적일 수 있다. 신기술 도입이 지연되거나 품질 문제가 발생하면 장기 공급계약을 잃을 수 있으며, 이는 기업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 실제로 2023년 일부 ESS 화재 사고 이후 관련 업체들의 수주가 급감한 사례가 있었다.
정책 리스크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의 관세 정책 변화는 수출 중심 기업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이 될 수 있다. 실제로 2025년 초 발표된 철강 관세 인상은 변압기와 케이블 제조사들의 원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공급망 리스크는 최근 더욱 심화되고 있다. 구리, 철강, 희토류 등 핵심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으며, 일부 부품의 중국 의존도가 높아 지정학적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다.
재무적 관점에서는 세 가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첫째, 미국 매출 비중과 환율 헤지 전략이다. 달러 강세 국면에서는 수출 기업들의 실적이 개선되지만, 환율 변동성 자체가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다. 실제 환율 헤지 비율과 방법론을 상세히 검토해야 한다.
둘째, 원자재 가격 연동 계약 비중이다. 최근 원자재 가격 변동성이 커지면서, 가격 전가(pass-through) 조항이 있는 계약의 비중이 수익성 방어의 핵심이 되고 있다. 셋째, 연구개발비와 특허 포트폴리오의 가치다. 특수변압기나 스마트 케이블 같은 차세대 제품 개발 역량이 중장기 경쟁력을 좌우한다.
전략적 관점에서는 파트너십의 지속가능성을 가장 중요하게 본다. 초고압 Major 업체나 미국 총판과의 관계가 특정 인물에게 의존하는지, 아니면 제도적으로 안정화되어 있는지가 핵심이다. 디지털 트랜스포머, 스마트 케이블 같은 차세대 기술에 대한 대응 역량도 평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ESG 요구사항 충족 수준인데, 특히 유럽이나 북미 시장 진출 시 탄소발자국 감축과 공급망 실사 요구가 강화되고 있어 이에 대한 준비 정도가 중요해지고 있다.
AI 인프라 전쟁의 진짜 승자는 GPU를 만드는 기업만이 아니다. 그 GPU를 구동하게 하는 전력을 공급하는 모든 생태계가 함께 성장한다. 반도체 너머 전력인프라까지 보는 시야가 진정한 투자 기회를 발견하는 열쇠다.
지금 우리는 산업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단순히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을 넘어, 생태계 전체를 조망하며 숨은 가치를 발굴하는 안목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