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투명성 추락' 무조건 감사 책임?

세계경제포럼에서 조사한 우리나라의 회계투명성은 세계 75위에서 91위로 추락했다. 그동안 정부의 노력을 감안하면 매우 의아스러운 결과다. 국제감사기준과 국제회계기준을 서둘러 도입했고 감사인 강제 교체 제도도 실시해봤다. 회계법인 감리는 과거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엄중하며, 감사인에게 투자손실의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까지 급증했다.

그런데도 추락한 원인은 무엇일까. 회계감사의 현장에 해답이 있다. 젊고 유능한 공인회계사들이 전직을 서두르고 있고 공인회계사가 되고자 하는 유명대학의 학생 수는 급감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감사 '권한'은 너무나 초라한데 법적 '책임'은 경제적 기반이 흔들릴 정도로 과중하다. 결산기는 대부분 12월로 집중돼 시간은 턱 없이 부족하고 할 일은 태산 같은데, 국제감사기준과 국제회계기준, 연결재무제표까지 도입돼 1년을 가까스로 버티고 나면 오만정이 다 떨어진다.

외감법 제1조를 보자. '공인회계사의 감사를 통해 회사의 회계처리의 적정성을 확보한다'고 천명한다. 이 때문에 회사의 회계처리가 잘못되면 감사인이 지도편달을 잘못한 결과이므로, 감사인은 분식 때문에 발생한 투자손실의 전액을 분식행위자와 연대해 배상하는 것을 당연한 논리적 귀결로 여긴다.

그러나 설령 조금의 과실이 있어 제한물품이 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했다 해서 세관원에게 전액을 배상하게 하지 않듯이, 감사인의 연대책임을 비례적 분할책임으로 바꾸는 법안이 최근 어렵게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부실감사를 근절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법 개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회계정보의 왜곡은 분식행위자가 아니라 감사인 때문이라는 사고에는 변함이 없다.

독일과 미국을 보자. 이들 국가는 감사인의 책임을 다르게 운영하면서도 각자 높은 회계투명성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끌고 있다. 독일에서는 고위험ㆍ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의 비정한 주식시장에서의 감사보고서는 증권회사 애널리스트의 종목추천과 다를 바가 없는 것으로 인식한다. 분식에 의한 손해는 아예 부실감사라 해도 감사인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는 태도다. 투자자의 정보권 침해에 대한 과태료란 개념으로 부실감사를 규제할 뿐이다.

미국도 부실감사의 책임을 제3자인 투자자에게 인정하고 배상액도 투자의 전부손해에 미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달리 고의와 중과실에 한하고 경과실은 통상적으로 면책한다. 특이할 점은 분식행위자에 대한 처벌을 살인죄에 버금가는 징역 20년 이하로 가혹하게 규정함으로써 감사인에 책임을 묻기 전에 분식의 원천을 차단한다.

결국 감사인이 대신해 책임지게 하는 지금의 얼개로는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차제에 투명회계의 주인공 자리를 감사인이 아니라 회계정보의 창출자인 회사에 돌려주면 어떤가. 그리하여 뛰어난 최고경영자(CEO)들이 정직한 회계를 고민하게 하고, 그에 터 잡아 부실감사를 타파하는 외감법 개정이야 말로 우리나라의 회계투명성을 선진국 수준에 올릴 수 있는 유일한 지름길로 본다. 아마 회계투명성에 대해 자기문제로 고민한 만큼 세계경제포럼의 설문에도 보다 진중할 수 있다.

김영식 삼일회계법인 대표
아시아 경제 2014년 1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