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감사 과부하' 시급히 풀어야

"결산기 편중으로 업무량 집중돼

비상장사 감사기한 연장 고려를

법인세 신고규정 개정 선행돼야"

섣부른 예단일 수 있다. 회계법인의 버팀목인 회계감사 업무가 무너질 징조가 보인다. 올해 삼일회계법인의 신입 채용에서 세무와 기업 인수·합병(M&A) 분야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회계감사 분야의 지원자는 대폭 줄었고, 컨설팅 분야는 전무했다. 회계법인에서 일할 수 있는 분야는 회계감사, 세무, 기업 M&A, 컨설팅 등 네 가지가 있지만 주력은 역시 회계감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청년회계사가 회계감사 분야의 지원을 꺼리는 이유는 감사실패에 따른 소송의 부담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당장은 견딜 수 없는 과중한 업무 때문이다.

회계사들의 연초 세 달 동안의 생활은 속된 말로 죽은 목숨이다. 전통적으로 비지시즌(Busy Season)이라고는 하지만 회계감사를 하느라 매일 새벽까지 일하고 주말까지 반납한다. 도가 지나쳤다. 업무가 과중하면 실수가 많은 법이다. 공공재인 회계감사가 이래서야 우리나라의 투명회계는 요원한 듯하다. 원인은 세 가지에 있다.

첫째, 법인세법이다. 우리나라 회사의 결산기는 대부분 12월 말이다. 회계사들의 1년 업무량이 연초 세 달에 집중돼 있다. 상장회사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라 늦어도 3월 말까지는 사업보고서에 감사된 재무제표를 첨부해 시장에 공시해야 한다. 그러나 주주의 구성이 단출한 비상장 회사까지 상장회사와 동일하게 3월 말까지 재무제표를 감사 받을 만큼 급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비상장회사가 3월 말까지 감사를 받고자 하는 것은 사업연도 종료일이 속하는 달의 말일부터 3개월 이내 재무제표를 첨부해 세금을 납부하라는 법인세법의 영향이 크다. 전통적으로 3월 말이 결산기였던 증권, 보험사의 결산기마저 12월로 바뀐 내년부터는 감내불능의 회계대란마저 우려된다.

둘째, 국제회계기준(IFRS)과 국제감사기준(ISA)도 일조를 한다. 우리나라는 모범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이들 양대 기준을 도입했다. 그러나 재무제표 작성기간과 감사시간이 충분해야만 그 효과가 구현된다. 우리나라처럼 감사기간이 짧은 환경에서 IFRS가 요구하는 까다로운 회계정보를 파악하고 ISA의 많은 감사절차를 수행하는 것은 그야말로 신기에 가깝다.

셋째, 감사기간이 짧지만 회사의 재무제표 작성 기한도 짧다. IFRS에 터잡은 재무제표를 작성하려면 회사는 고도의 깊은 회계적 지식과 숙련을 필요로 한다. 실력이 모자라면 재무제표 작성기한이라도 충분해야 한다. 급하게 작성되는 재무제표에 정확성과 완전성이 보증될 리 없다. 회계사들은 이들 미완성재무제표 때문에 업무가 너무나 과중하다.

회계사가 지속적으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면 실수할 가능성도 높다. 우선 제도적으로 한 가지만이라도 고쳐보자. 비상장회사의 감사기한을 3월 말이 아니라 몇 개월 연장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법인세 신고기한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 세수가 염려된다면 일정액의 법인세를 작년 혹은 가결산 기준으로 3월 말에 선납한 후 충분한 회계감사를 받고 정확한 세금을 계산해 나중에 정산하면 된다. 주고 받는 금액에는 시장이자율의 적정이자를 가산한다.

이 같은 제안은 사실 현행 법인세법 아래 규정돼 있는 일부 제도를 확대하자는 것에 불과하다. 법인세 중간예납제도와 신고기한 내 결산이 확정되지 않을 경우 이자를 받고 1개월 내 연장해주는 현행제도에 착안하고 있다. 마침 이 제도는 미국, 독일,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9월 또는 12월까지 마감일을 정하는 등 이미 시행되고 있다. 따라서 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걱정할 이유는 없다.

이렇게만 된다면 회계사들의 감사업무는 3월까지는 상장회사에, 이후에는 비상장회사에 집중할 수 있다. 나아가 비상장회사의 재무제표 작성기한이 길어지는 덕분에 정확한 재무제표 작성도 담보할 수 있다. 회계사가 정신 없이 바쁘게 일해야 회계가 투명해진다는 것은 이미 구시대적 발상으로 보인다. 우스개로 들리겠지만 자본주의의 파수꾼인 회계사가 할 일이 없어야 신뢰사회이고 투명사회인 것이다.

안경태 삼일회계법인 회장
한국경제 2012년 8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