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ㆍ법무ㆍ세무법인 한꺼번에 싸우는 이종격투기 시대 옵니다"


창립 40년 맞은 삼일회계법인 안경태 회장

창립 40주년을 맞는 삼일회계법인의 안경태 회장은 "기업들의 수요에 의해 회계·법무·세무·노무 등 다양한 전문지식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통합 펌 시대가 오고있다"며 "삼일회계법인은 궁극적으로 회사명에서 회계법인을 뗀 '삼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경태 삼일회계법인 회장(57)은 두 시간의 인터뷰 내내 '3'이란 숫자를 강조했다. 회사명부터 석 삼(三)자와 빼어날 일(逸)자다. 회계법인의 대표적인 서비스인 회계감사, 세무자문, 경영컨설팅 등 세 영역에서 빼어난 실력을 갖추자는 의미다. 올해 캐치프레이즈도 '업무 효율성 증대(smart)', '인적구성 및 역량 다양화(diverse)', '규율 중시(disciplined)' 등 세 가지다. 그가 유난히 3을 강조하는 이유는 3이 안정을 의미하고 신뢰를 주기 때문이란다. 회사를 찾는 손님에게 자신이 읽은 책을 선물로 줄 때도 3권씩 선물한다.

삼일회계법인이 오는 4월 1일로 창립 40주년을 맞는다. 1975년 삼일회계법인의 전신인 라이부란회계법인에 입사, 신출내기 회계사에서부터 최고경영자(CEO)가 되기까지 36년간 '삼일맨' 외길을 걸어온 안 회장을 서울 한강로2가 LS용산타워 21층 회장실에서 만났다. 그는 "조만간 법무 · 회계 · 세무법인 등 온갖 영역의 전문가들이 지식서비스라는 '링'에서 싸우는 이종격투기 시대가 온다"며 "삼일은 앞으로 총체적인 지식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가 집단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4월 1일로 창립 40주년을 맞습니다.
"라이부란회계법인을 서태식 창업회장(현 명예회장)이 세우신 게 1971년입니다. 40년 전 직원 수 6명에 불과했던 작은 회계사무소가 이제는 3700여명이 일하는 국내 최대 회계 · 컨설팅회사로 성장해 불혹의 나이를 맞았습니다. 뭘 해도 1등이 되자는 기본자세가 오늘의 삼일을 만들었습니다. "

▼ 40년 역사에서 자랑할 만한 일은 무엇인가요.
"회계사의 업무영역을 선구적으로 개척해 온 것입니다. 회계업계에선 '박세리 효과'와 비슷하게 '삼일 효과'라는 얘기를 합니다. 박세리가 미국 LPGA에 진출한 이후 수많은 유망주들의 세계무대 도전이 시작됐듯이, 삼일이 새 영역을 개척하면 다른 회계법인들이 합류해 시장을 키우고 넓혀온 거죠."

▼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입니까.
"정보기술(IT) 컨설팅, 전사적 자원관리(ERP) 시스템을 앞장서 도입했습니다. 국내에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란 용어조차 없었던 1990년대 말에는 구조조정 업무도 처음 시작했습니다. 영국에서 전문가를 초빙하고 뛰어난 회계사 몇 명을 붙여 일을 배우게 했습니다. 그 덕에 대우 워크아웃 등 굵직한 구조조정 업무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국내 기업의 해외상장도 주도했습니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7개 기업 중 6개를 상장시켰습니다. "

▼ 우여곡절도 많았을 텐데요.
"2000년대 들어 현대그룹 대북송금을 둘러싼 분식회계 사건이 터졌을 때가 고비였습니다. 회계법인에 가장 중요한 신뢰가 훼손될 위험에 처했죠.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고 과징금도 물고 시민단체로부터 비난을 받는 등 많이 어려웠습니다. "

▼ 위기를 통해 배우신 점도 있을 것 같습니다.
"회계법인은 신뢰가 가장 큰 자산이고, 신뢰를 얻기 위해선 가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런 면에서 윤석철 한양대 석좌교수의 '생존부등식'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깁니다. 생존부등식이란 소비자가 느끼는 제품가치가 제품가격보다 커야 하고, 가격은 원가보다 커야 한다는 것입니다. "

▼ 올해부터 국제회계기준(IFRS)이 국내에 본격 도입됐는데 잘 뿌리내릴 수 있겠습니까.
"대기업들은 준비가 잘 돼 있지만, 중소기업은 미비한 측면이 있습니다. 일부 중소기업 사주들은 회계를 그냥 경리 보는 사람이 알아서 대충하면 되는 '곁다리 업무'로 생각하기 때문이죠. 삼일은 준비가 덜 된 중소기업을 위해 회사당 두 명씩 무상으로 교육해 주고 있습니다. 적응기간이 필요하겠지만 차츰 나아질 것이라고 봅니다. "

▼ IFRS 도입 이후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IFRS는 전 세계 공통의 회계기준입니다. 세계 어디서라도 이용할 수 있는 만큼 해외 증시 상장비용이 엄청나게 싸지고 외국기업의 국내 상장도 많아질 겁니다. 반면 이용자가 늘면서 위험도 동시에 커집니다. 나가는 기업, 들어오는 기업이 많아지니까 세계 어느 나라에서라도 소송이 걸릴 수 있습니다. "

▼경영자들도 회계를 모르면 힘들겠습니다.
"IFRS는 고정된 기준이 아닙니다. 현재 국제회계기준위원회와 미국이 회계기준 통합을 위한 논의를 진행 중입니다. 미국이 IFRS를 그대로 적용하면 엄청난 충격이 올 수 있어 절충안이 나올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기업들은 또다시 그 변화를 따라가야 합니다. "

▼ IFRS에선 기업 재량권이 커 분식 우려도 있는데.
"대기업들은 많이 투명해졌지만 코스닥의 일부 중소기업에선 여전히 그런 사례가 있습니다. 감사할 때 회사의 재무적 수치 외에도 경영자 스타일, 지분구조 등을 복합적으로 검토해 큰 위험을 걸러냅니다. 작년 네오세미테크의 상장폐지는 부실감사뿐 아니라 기업공개 제도의 미비, 경영자 분식의도 등이 주요인으로 생각됩니다. "

▼ 개선책은 없을까요.
"분식에 따른 상장폐지를 예방하려면 상장심사를 할 때 검토하는 사업보고서를 직전 연도가 아닌 해당 시점의 재무제표를 확인하도록 바꿔야 합니다. 7월에 상장하는데 전년 12월 말 감사보고서로 심사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한두 달이면 회사 자산을 다 빼돌릴 수 있으니까요. 현재 관계당국이 제도 보완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 다른 회계법인들이 해외 제휴선의 멤버펌(국내법인 · 지사 형태)인 것과 달리 삼일은 자율적 권한이 큰 '네트워크펌' 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삼일이 한국시장에서 갖는 위상 덕에 해외 제휴선인 PwC 내에서 유일하게 독자경영권을 갖는 네트워크펌 지위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10여년 전부터 글로벌 회계법인들이 단일 지도체제를 갖춰야 한다며 멤버펌으로 들어올 것을 강하게 요구했지만, 인사권 등에서 큰 제약을 받기 때문에 거부했죠. 앞으로도 자율권을 보장받는 수준에서 협력관계를 이어갈 것입니다."

▼ 국내 기업들이 대형화 · 글로벌화하면서 법무 · 세무 · 회계 등 전문지식서비스를 한꺼번에 제공하는 통합 펌에 대한 요구가 꾸준히 제기됩니다.
"지금은 회계 · 법무 · 세무 · 노무법인 등으로 모두 나뉘어 있지만 실제로 자문을 하다 보면 모든 전문영역 서비스가 한꺼번에 필요합니다. 예컨대 인수 · 합병(M&A)을 자문할 때 예전에는 재무실사만 했는데, 이제는 고객(기업)들이 인사 IT 등 전 분야의 실사를 한꺼번에 해 주길 원해요. 전문지식 서비스의 다양한 영역 간에 무제한 진검승부를 벌이는 '이종격투기' 시대가 오고, 이에 적응할 역량이 필요해진 겁니다. "

▼ 국내에서 통합 펌은 어떤 형태로 가능하겠습니까.
"결국 로펌, 회계법인 등 전문성을 갖춘 조직들이 하나의 지주회사 밑에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통합 펌 형태로 가게 될 겁니다. 그때가 되면 회사명이 '삼일회계법인'이 아니라 '삼일'로 불리게 될 것입니다. "

▼ 미래의 삼일회계법인은 어떤 모습일까요.
"장기적으로는 현재 3700명인 직원 수를 5000명 정도로 늘릴 계획입니다. PwC 전체로 보면 약 2% 정도이며, 순위도 현재 14위에서 10위권으로 올라서게 됩니다. 이 정도면 글로벌 PwC 내에서 자기 목소리를 충분히 낼 수 있는 수준입니다. 현재 100여명 정도인 해외 파견직원 수를 500명 정도로 늘려 글로벌 지식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로 성장시키고 싶습니다. "


안경태 회장, 49세에 업계 최연소 CEO…국내 기업자문 업무 개척자

창립 40년 맞은 삼일회계법인 안경태 회장

고향인 부산에서 방직사업을 하던 부친의 회사가 부도나자 대구로 이사했다. 어려운 집안환경 속에서도 경북대사대부고를 수석 졸업했다. 나랏일을 하는 공무원을 꿈꿨지만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서울대 상대 4학년 때 공인회계사로 눈을 돌렸고, 한 해 10명만 뽑는 '바늘구멍' 같은 시험을 1년 만에 통과했다.

합격 후 1975년 가까운 친구의 소개로 삼일회계법인 전신인 라이부란회계법인의 서태식 창업회장을 만나게 됐다. 큰 기대없이 나간 자리였지만 서 회장의 품성에 매료돼 입사했다. 일을 시작했지만 기업들이 만들어 낸 숫자를 맞춰보는 회계사 업무가 적성에 안 맞아 고민했다.

결국 외국계 회계법인과 국내 회계법인 사이 업무를 조정하는 일을 맡게 됐고, 기업 컨설팅에도 발을 들여 대표적인 기업자문 전문 회계사로 자리매김했다. 2003년 그간의 성과를 인정받아 파트너 총회에서 대표이사 및 최고경영자(CEO)에 선출됐다. 만 49세에 회계업계 최연소 CEO가 된 것이다. 2007년엔 회장으로 취임했다. CEO로 8년째, 회장으론 4년째다.

대담 = 오형규 증권부장 / 정리=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
한국경제 2011년 2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