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부터 상장회사의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이 의무화된다. 우리뿐 아니라 전세계가 회계기준
글로벌화에 동참하면서 마치 국적과 소재지에 상관없이 전세계 모든 기업의 재무 정보를 비교 분석하고
투자 의사를 결정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꿈에 부풀어 있는 것 같다. 과연 회계 국경은 사라질
것인가.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렇지 않다.
IFRS 도입 4년째에 접어든 유럽의 사례를 보면 명확하다. 여러 논문이나 리서치 자료들이 동일한
회계기준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국가간 회계 처리나 공시정보 내용에 차이가 있음을 실증하고 있다.
예를 들면 프랑스 제조업체는 영국의 제조업체보다는 프랑스 리테일 업체의 회계 처리 및 재무 정보와
유사하다. 쉥겐조약에 따라 국경이 사라진 지 이미 오래이고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따른 단일통화 유로를
사용하는 단일 경제권 유럽에서도 회계기준 통일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왜 그러할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물리적 국경은 사라졌으나 역사, 관습, 정치, 사회적 요인에 따른
보이지 않는 국경선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회계 또한 사회, 정치, 경제적 합의의 산물로서
경제체제 내의 다른 시스템들과 상호작용하면서 꾸준히 진화한다. 따라서 회계기준의 밑바탕이 되는
소프트웨어가 변하지 않고 단순히 IFRS 규정만 도입해서는 물위에 떠 있는 기름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개인의 논리적 사고력, 기술적 전문성, 산업에 대한 이해, 토론 및 의사전달 능력 등이
확보돼야만 토론과 합리적 판단에 기초하고 있는 원칙 충심의 기준이 정착될 수 있으며 따라서
각각에 대한 대응 방안들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회계업계 종사자가 갖춰야 할 세 가지 자질은 글로벌화, 전문화, 도덕성이라고 판단된다.
기업 활동의 글로벌화는 필연적인 세계적 사고와 글로벌 플레이어로서의 능력을 요구한다.
우리 기업들이 전세계에서 글로벌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는 마당에 회계업계의 글로벌화 또한
필연적일 것이다. 단순히 영어 능력만이 문제가 아니다. 현재 국제회계기준 도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기업들을 살펴보면 말 그대로 우리만의 리그를 치르고 있지 않나 하는 걱정이 든다.
기 도입 국가의 경험과 시행착오를 활용하고 벤치마킹하려는 노력은 찾아 보기 힘들다.
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상장기업의 57%가 국제회계기준 전문가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필자의 느낌은 이마저도 너무 높다고 생각되지만 과연 우리 상장사의 회계담당자들은 원칙 중심의
국제회계기준에 대한 준비가 돼 있는가. 우리의 회계사들은 다들 국제회계기준 전문가인가.
전문직종은 서비스 품질로 경쟁해야 하는데 최근의 덤핑에 가까운 국제회계기준 도입 프로젝트
수주 경쟁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저가 경쟁은 필연적인 저품질의 결과물을 만들고 결과적으로
또 하나의 우리만의 회계기준을 만들 것이다.
개개인의 탐욕이, 이윤 동기가 최적의 사회를 만든다고 했던가. 그러나 회계업계에는 이 말은 적용될 수
없을 것 같다. 공공재적 성격의 회계 및 회계감사의 특성상, 도덕성과 윤리의식으로의 무장만이 진정한
전문가적인 서비스를 창출하는 길이다. 감사인 독립성 규정이나, 모호한 기준 해석의 사선을 넘나들고
있지 않은지 자문해 볼 때다. 주관적 판단에 따른 원칙 중심의 기준 하에서는 개개인의 도덕성만이
회계 투명성을 보증할 수 있다 하겠다.
필자는 이번 기회에 회계업계의 악순환이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투자자의 재무정보 활용도가
낮으니 기업들은 투명한 회계정보 제공에 무관심하고 이로 인한 회계법인의 필연적인 보수 경쟁은
낮은 서비스 품질을 유발하며 투자자의 재무정보 이용도는 더욱 더 낮아지고 시장기능에 실망한
규제기관은 더욱 규제 위주 정책을 집행하게 되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는 우리 모두의 노력에 의해서만
없어질 것이다.
회계국경은 2011년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점점 희미해질 것이며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십 년이 또는 수 십 년이 걸릴 것이다.
동일한 경제적 사건에 동일한 회계처리를 달성해 지구촌 자본시장 발전의 기초가 되겠다는 꿈은
업계 관계자들이 글로벌화, 전문화, 도덕성을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때 이루어질 것이다.
물론 소프트웨어 측면의 개혁은 성공적인 IFRS 도입의 필수조건이다.
[파이낸셜뉴스 2009-03-19]